제 목 안중근의사의 신비성과
작성자 안덕주 작성일 2019-07-08 오전 10:13:44 조회수 135

안중근의사의 신비성과

자유대한민국의 기적

안 덕 주

포스코 창립회원

 

안중근의사의 옥중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를 보면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안 의사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항일운동을 위하여 조국을 떠나 엔치아(烟秋)로 이동후 의병을 일으켜 일군과 교전도 벌이고, ‘인심결합론으로 교민 계몽활동도 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단지동맹도 맺었으나 1909년 동양의 국제정세는 일본의 팽창으로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국내 동정은 어떠한지 좀 다녀오고 싶었으나 자금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고 딱히 어떤 일을 계획하지도 못하며 부득이 엔치아에 체류하고 있던 중 동년 9월 느닷없이 울적하고 초조해지며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 예사롭지 않은 첫 번째이다. 이렇게 씌어 있다:

 

그 때 나는 연추에 머므르고 있었는데 하루는 마음이 울적하고 초조함을 이길 수 없어 스스로 진정하기 어려워 친구 몇 사람에게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 하오하였더니, “왜 그러느냐? 아무런 기약도 없이 졸지에 왜 가려는 것이오.” 하므로, 나는 나도 까닭을 모르겠소. 도저히 이곳에 더 머물고 있을 생각이 없어 떠나려는 것이오.” 하였다. “이제 가면 언제 오는 것이오.” 하므로, 나는 무심중에, ”다시 안 돌아오겠소.” 하자, 그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고 나도 순간적으로 그런 대답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것인데 갔더니 뜻밖에 이토가 그곳에 온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신문을 보니 대련을 통하여 하얼빈에 올 것이 사실이라는지라 이때부터 의군 지도부와 하얼빈에서 이토를 처단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하다. 염원하며 준비하고 기다리면 영감이 온다는 것일까?

다음의 천우신조는 안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에서의 활동비를 위하여 전 황해도 의병장이던 이석산에게 찾아가 100원을 어렵게 마련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만일 이석산 의병장이 여행 중이었다든가 끝내 응하지 않았더라면 하얼빈에 가는 시기나 자금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다음의 다행은 안 의사가 거사 장소를 창춘(長春)으로 할 것을 고려하여 자금으로 김성백 씨로부터 50원을 빌리려 하였었는데 출타 등 이유로 돈이 얻어지지 않아 차이차거우(蔡家溝)에서 창춘으로 가지 않고 하얼빈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니 만약 돈이 얻어졌다면 과연 일본 관할 창춘에 가서 거사를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밖에도 안 의사가 2-300명의 의군을 이끌고 경흥과 회령등지에서 30여 차례의 교전을 벌이며 일본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생환한 점, 그 후 일진회(一進會)의 습격에서 위험을 맞았으나 요행히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점은 아무래도 안 의사는 특별한 목적으로 하늘의 가호와 인도로 이 세상에 오고 산 분으로 밖에 볼 수 없게 하는 것 들이다.

안의사의 의거로 기미3.1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이 펼쳐졌고 그 결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조선은 연합국에게 독립주권국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분단이 되고 전란을 겪었음에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공업국가로 변모한 점은 안 의사가 인도된 것처럼 대한민국도 인도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으로 역시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안 의사의 진면목은 재판과정에서 모든 사람 들을 놀라게 한 바와 같이 단순한 저항 무인이 아니라 문필가, 종교인, 역사가, 사업가, 국민계몽운동가, 사상가로서 특히 평화체제에 대하여 고심했던 점에 주목이 간다. 법정에서 그의 마지막 소망은 동양평화와 그를 위한 국제적 장치를 밝히는 것이었었다. 그가 국가 간의 평화체제를 언급한 것은 후의 국제 연맹 논의보다 10여 년 전의 일이고 내용을 보면 지금의 유럽연합같은 내용이 지금부터 110여 년 전인 그 때에 구상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인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신흥 모범국으로 성장한 나라로서 안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어떤 소명이 주어진 나라라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 소명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전개가 될까? 안 의사가 바라는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역할,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평화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옥중 대한인 안응칠소회에서 안 의사는,

하늘이 사람을 내어 모두 한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이라. 오늘날 사람 들은 문명한 시대라 일컫지만 나는 홀로 그렇지 않는 것을 탄식한다. ... 무릇 문명이란 것은 ...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 그런데 오늘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여...’

 

라고 그의 평화에 대한 희구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언제나 냉엄한 것이지만 다행히 인류문명은 안 의사가 바라는 바대로 진정한 평화를 위한 자유, 민주, 평등의 확장을 향해 발달해 왔다. 자유대한민국도 그러한 추세에 힘입어 회복되고 발전하였다. 혹자의 표현을 빌리면 패권국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나 지금의 패권국은 거칠다 해도 과거 지구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신사적이라 한다. 세상이 그만큼 더 문명화 된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도 팔에 힘을 주는 전체주의국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국가가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과거와 달리 큰 힘이 항상 자유, 민주, 평등을 향하여 작용하고 있다. 안 의사가 바라는 대한민국에 대한 소망은 아마도 가깝게 북한과 중국과 관련 된 것이 아닐는지. 그 프로세스는 알 길이 없지만 묘하게도 그 안 의사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이 두 나라에 인접해 있고 대한민국은 여하튼 어떤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 소정의 시간을 가지며 대한민국은 하늘의 신비한 힘으로 인도되어 어떤 형태로든 세계인의 평화로운 삶에 이바지하는 일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미친다. 북한과 중국은 결국 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아지는 나라들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구한말의 비운 같은 것이 되풀이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후예인 대한민국의 자유인과 북한의 자유인이 합치면 8천만이요 동양평화의 시작점이요 이들의 성과물은 곧 세계의 이목과 박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신비성은 대한민국의 기적에서 한반도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다.<>20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