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安珦의 학맥이 이상해서 ..
작성자 류기창 작성일 2019-01-07 오전 3:17:53 조회수 298
(성리학 조종 안향의 학맥. 퍼온글)

그는 2차에 걸쳐 과거를 주관하여 많은 문생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은 이후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전수받게 되고, 또 그와 함께 과거에 합격한 동년과 그의 문인 유경․이장용의 문하에서 과거에 합격한 선후배의 동문들도 그와 교유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을 접하게 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류경 柳璥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천년(天年) 또는 장지(藏之). 조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유공권(柳公權)이고, 아버지는 좌복야(左僕射) 유택(柳澤)이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말과 웃음이 흡족하고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뛰어나 원부(元傅)·허공(許珙) 등이 모두 유경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다. 다만 재물을 많이 모아 한때 삼한(三韓)의 거부로 불리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장에 뛰어나 신종·희종·강종·고종 등 4대의 실록편찬에 참여했으며,
도합 4회에 걸쳐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이존비(李尊庇)·안향(安珦)·안전(安戩)·이혼(李混) 등이
모두 문생(門生)이다.

다음 백과사전
  태조 때의 공신 차달의 후예로서 정당문학 공권의 손자이다.
고종조에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차례 승진해 국자대사성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정방에 있으면서 유천우와 함께 최항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1257년 최항이 죽고 그 뒤를 이어 권력을 세습한 최의가 조정 신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데다 실정을 거듭해 인심을 잃게 되자,
1258년 김인준과 모의해 최의를 죽이고 무신정권을 종식시켰다.

정변을 일으킨 주역 중 유일한 문신이었던 그는 정방을 편전 곁에 두고 모든 국가의 기무를 결정했다. 특히 그는 학문적으로 진정국사, 이장용, 김구 등 당대의 문인들과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였으며 4차례 지공거를 맡아 당대의 문풍을 주도함으로써 고려 후기의 한문학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
이존비·안향·안전·이혼 등이 그의 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