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보로 지정된 초상화는 모두 네 작품이다. 고려 회화로 「이제현상(李齊賢像) 제110호」, 「안향상(安珦像) 제111호」, 조선회화로 「송시열상 제239호」, 「윤두서상 제240호」이 있다. 「이제현상」은 중국 화가인 진감여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향상은 1318년(고려 충숙왕 5) 제작되었고 「이제현상」은 1년 뒤인 1319년 제작되었다. 여기서 「이제현상」의 국보 순위가 앞선 것은 「안향상」은 조선시대 개모작(改模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작품은 개모작을 그리면 모방작으로 가치가 떨어지지만, 역사적 인물을 그린 초상화는 진본과 같이 취급한다. 「안향상」이 이런 경우의 대표적 사례이다. 파손된 유물을 복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작품의 우수성도 대단하지만 그 인물의 역사적 비중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안향상」을 보고 주세붕(1495~1554)선생은 “내가 문성공의 종손 안정(安珽:14세)의 집에서 공의 영정을 뵌 바, 멀리서 바라보니 엄연하고 다가서보니 온화하더라. 진실로 대인군자의 용모로서 생전의 모습을 친히 뵌 듯 마음속 깊이 잊히지 않았다.”고 쓰고 있고, 여러 학자와 선비들이 그 영정을 보고 엄숙함과 온화함을 잊을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의 선비정신과 통치철학의 근간인 주자학을 이 땅에 맨 처음 도입하신 문성공 회헌선생의 모습을 확실히 만나 뵐 수 있고, 후세에 전하는 것은 초상화밖에 달리 없다. 따라서 「안향상」이 마모되어 훼손되어 그 풍모를 잃으면 당연히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작품의 훼손상태가 심각하면 원래 모습대로 재생 복원하는 것을 개모(改模)라 한다.

지금 소수서원에서 보는 영정은 1318년에 제작한 원작이 아니고, 1559년 도화서 화원 이불해(李不害)의 손으로 다시 그려진 개모작이다. 명종 13년(1558) 풍기군수로 새로 부임한 장문보에 의해 발의되고 소수서원장 안구를 통해 공문을 올리니, 심통원 예조판서의 지시와 당시 좌의정 안현선조의 각별한 도움에 힘입고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이 가채(加彩)의 고유문(告由文) [남기신 영정 일그러져 선생의 모습 온전히 찾을 길 없어 새로이 단장하려 이에 단정히 고하나이다]을 올리고 1년 만에 완성하였다.

이 영정은 비단에 그린 반신상으로 세로 87.0㎝, 가로 52.7㎝ 채색화로, 평상복인 수포(袖袍)를 입고 문라건(文羅巾)을 단정히 쓰고 앉아 계시는 선생의 풍모는 멀리서 보면 엄연하고 가까이 보면 온화하다. 특히 상반부에 아들 우기(于器)가 고려 충숙왕 5년(1318) 원나라에서 그렸던 영정을 왕명을 받아 다시 모사하여, 흥주향교(興州鄕校)에 봉안하게 된 과정을 쓴 찬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