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암(永慕庵)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821

 추밀공(안영유 安永儒)께서는 서기 1202년 순흥 서남 평리촌(坪里村)에서 태어나셔서 덕(德)을 쌓아 아들인 태사공과 손자인 문성공(安珦)을 두시어 후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추봉되셨다.

 그리고 영모암은 1558년 시조공(安子美)의 12대 손인 판결사 휘 상(常)께서 영천군수로 부임했을때 건축했다.

 이 영모암의 묘소는 명당중의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시조공의 12대 손인 판서 휘 위(瑋)게서 찬한 비문의 일부를 옮겨보면 [선고 추밀공(樞密公)의 상을 당하여 슬퍼한 나머지 해를 넘기고 달이 바뀌도록 장례를 거행하지 못하여 걱정하던 차 마침 이상한 사람이 그 상중(喪中)에 애통하는 것을 보고 말하되 “내가 지리(地理)를 조금 아니 그대가 나를 믿고 따르겠는가?”하자 태사공이 일른 허락하고 드디어 함께 지장산에 가서 답사하였으나 그 자리를 말하지 않고 산에서 내려와서 말하되 “내 손 부채를 그 산중에 두고 왔으니 가서 찾아올 수 있겠는가?”하기에 태사공이 홀로 그 곳에 가보니 부채가 정중(正中)에 놓아 있는데 상하 양끝이 좌향(坐向)을 가리키는 것 같은지라 곧 깨닫고 그 끝을 표하여 산을 내려오니 그 사람은 온데 간데 없었다. 돌아와서 준비하여 장례를 행하였다. 그 후 3년상이 끝난 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차츰 올라 밀직부사를 거쳐 판도판서에 올랐으며 뒷날 태사문 하시중에 추봉되었다...]

 영모암은 해마다 전국에서 모이는 자손들이 제사를 올리는 재실로 전날 밤에 선조님들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규약을 배우고 또 숭조목족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강론(講論)한 전통있는 재실이다. 순흥안씨라면 각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성묘하고 잘 받들어야 할 것이다.

영모암(永慕菴)

2세 추밀공(휘 永儒) 신도비

추밀공(휘 永儒) 묘소

영모암(永慕菴) 시제

주천(酒泉)-순흥안씨 마음의 샘물(영모암 뒤편)

영모암(永慕菴)

현판영모암과 묘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