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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紹修書院)


지 정 별: 사적 제55호, 1963-01-21 지정, 7,504㎡
소 재 지 :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내죽리 151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중종 39)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 제사지냈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四書五經)』·『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원의 건물로는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이란 편액이 걸린 강당, 그 뒤에는 직방재와 일신재, 동북쪽에는 학구재, 동쪽에는 지락재가 있다. 또한 서쪽에는 서고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의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가 안치된 문성공묘가 있다.


건축 배경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중종 39)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 제사지냈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四書五經)』·『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축 구성
일반적으로 서원은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을 본떠서 앞쪽에 교육공간이 있고, 뒤쪽에 제사공간인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소수서원은 일찍 창건된 까닭에 그러한 형식 대신 동학서묘(東學西廟)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진입하는 문도 중국식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구조가 아니라 외단문과 내단문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는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절대로 사당을 지으며 화려한 문을 달지 말라.”는 안향의 유언을 따른 때문이다.

정문인 지도문(志道門)을 들어서면 ‘백운동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강학당, 즉 명륜당이 나온다. 동향으로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이 달려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명륜당의 뒤쪽에는 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가 있는데 선비들의 기거공간으로 동재와 서재이다.

일신재와 직방재의 오른쪽에는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가 있다. 학구재는 주세붕의 문인인 송간 황응규(黃應奎, 1518~1598)가 세운 것으로 어린 아이들의 교육 장소였다. 지락재는 창석 이준(李埈, 1560~1635)이 풍기 군수로 있을 당시 세웠다. 동재·서재의 서쪽에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있고, 그 뒤로 제향 때 제수를 차리는 전사청(典祀廳)이 자리하고 있다. 서원의 담장 밖으로 나오면 원생들의 휴식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경렴정(景濂亭)이 있다.
소수서원 전경
 
소수서원
 
소수서원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