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紹修書院) 영천서원(寧川書院) 신암서원(新巖書院) 합호서원(合湖書院) 계담서원

영천서원(寧川書院)


지 정 별: 전북 문화재 자료 20호 ∙지정일자: 1975. 2. 26
소 재 지: 임실군 지사면 영천 58
 
1619년(광해군 11년)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년) 임금이 친필로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된 서원중 최고의 서원이다. 당시 남원부 48방중의 지사방이었으나 1914년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내의 30여 서원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었으므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서 몰려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일반서원과 같이 1868년(고종 5년)에 헐었다가 해방 후 후손들이 재건한 것이다. 헐기 전의 건물로는 사우 3칸, 신문 1칸, 동서협문 각 1칸, 전사고 1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우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강당 및 3문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서원은 중종때 기묘사화에 희생된 사제당(思齊堂) 안처순(安處順)을 주벽으로 하여 정환, 유헌, 정황, 활계 이대빙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사우의 지붕은 맛배 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중앙에는 상부가 교착형식으로 사분 합문을 달았는데 좌우측에는 같은 형식의 두 짝 열 개의 복합문이 있다.

공포는 기둥위에만 배치되었으며 공포와 공포사이에는 화반 한 개씩을 놓았다. 강당의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사원】 영천서원(寧川書院) 광해군 기미년에 세웠으며, 숙종 병인년에 사액하였다. 안처순

(安處順) 자는 순지(順之), 호는 사제(思齊)이고, 순흥(順興) 사람이다. 벼슬은 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이다. 정환(丁煥) 자는 용회(用晦), 호는 회산(檜山)이며, 창원(昌原) 사람이다. 벼슬은 경상 도사(慶尙都事)이다. 정황(丁熿 자는 계회(季晦), 호는 유헌(游軒)이며, 정환(丁煥)의 아우이다. 명종 경신년에 귀양 가서 죽었고, 벼슬은 사인(舍人)으로 예조 판서(禮曹

判書)에 증직하였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이대유(李大甹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이며, 경주(慶州) 사람이다. 벼슬은 형조 좌랑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9권, 전라도(全羅道)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
영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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